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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1-26 (일) 06:47
홈페이지 http://www.koabbey.com
첨부#1 1-4_영성훈련.pdf (156KB) (Do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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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훈련 (목회 매뉴얼에서 발췌)
영성훈련   (목회 메뉴얼에서 발췌)


기독교 영성생활이란 믿음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땅에서 성육신적인 삶을 역사의 현장에서 실현해 가며 하나님을 향한 계속적인 영적 여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영성생활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곧 '영성훈련'이다. 그런데 '영성훈련' 이란 말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마치 하나님의 은총을 배제한 인간의 능동적인 행위를 우선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교회 영성의 특징에 비추어 보면 더욱이 용납하기가 어렵다. 개혁교회의 전통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총을 선행조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총'이란 우리가 무슨 조치를 취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은총은 말 그대로 처음부터 우리 행위의 정당성을 배제한 것이다. 그저 기다려서 얻을 수 있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영성훈련이란 말을 아예 사용하기를 꺼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훈련'이란 말은 요즘 교회에서 끊임없이 사용되는 유행어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영성훈련이란 말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 의미를 제대로 찾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혁교회에서의 영성훈련이란 두 가지 측면을 만족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측면은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라는 문제를 영성훈련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요, 두 번째 측면은 '성화'(聖化)의 문제이다. 이신칭의와 성화를 영성훈련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개인으로 하여금 이신칭의에 이르도록 하는 영성훈련을 '영성적 개발(開發)'이라고 한다면, 성화에 관한 영성훈련을 '영성적 개발(開發)'이라는 말로 구분하여 그 의미를 세분화할 수 있다.
먼저, 영성적 '계발'(illumination)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라는 교리야말로 개혁자들이 성서에서 재발견해 낸 가장 위대한 깨달음 중의 하나이다. 이 교리는 인간이 부여받은 영성적 심성에 대한 무기력함을 고발한 것이며, 동시에 깊은 모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에게 확고한 평화를 안겨 준 사건이기도 하다. 개혁교회에서는 이것이 영성형성의 근본적인 토대가 된다. 둘째는 영성적 '개발'(development)인데, 이것은 첫 번째를 토대로 하여 점진적인 과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을 실제적으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재현해 감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려는 노력을 말한다.
이제까지 한국교회의 현실은 적극적인 의미의 영성훈련이라기보다는 '이신칭의'라는 자각적인 의미에서의 영성 계발에 주안점을 두어 왔다. 말하자면 구원받은 백성을 만드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삶의 형성에 대해서는 다소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본회퍼는 '값싼 은혜'라는 신학적인 용어를 빌려 당시 독일 루터교회의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이는 적극적인 영성훈련을 하나의 '공적사상'으로 치부해 버림으로써 개혁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한 모호한 태도를 취한 당시의 신학적인 입장이 빛어낸 '값싼 은혜'에 대한 반성의 소리를 촉구한 말이다.
사실 루터는 '믿음에 의한 의인화'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와 같은 성서'라고 부르기도 했다. 루터의 입장에서 보면 성서에서 빠져 주었으면 하는 성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종교개혁자 칼뱅은 야고보서를 믿음으로 인한 의인화와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칼뱅은 믿음을 강조한 바울과 행위를 강조한 야고보를 대립적인 인물이 아닌 대화와 조화의 인물로 다루고 있다. 야고보가 이 글을 쓰게 된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서 이 성서를 이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즉, 믿는 자가 마땅히 행할 일을 소홀히 하면서도 거짓으로 믿는다고 자랑함으로써 그 불신앙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당시의 어리석은 자들을 지적한 것이 바로 야고보서라고 말하고 있다. 내용 없는 믿음의 모양만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방탕한 생활에 자신들을 내맡기고도 태연했던 그 어리석음을 폭로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믿음은 결코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정한 이신칭의란 성화와 나란히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개혁영성에 비추어서 영성훈련이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고 실현해 가기 위한 능동적인 영성활동을 말한다. 행위가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는 것이 아무 표징도 볼 수 없는 내용 없는 교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영성적 '계발'과 '개발'의 두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영성 계발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작업을 의미한다. 그것은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경험적으로 양심의 평화와 사죄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정서적인 개발을 도와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서적인 확신이 없는 지적인 인지란 아무 능력도 발휘할 수 없는 말뿐이라는 것이다.
의인화는 개혁가들의 이신칭의 교리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능동적으로 단계적인 성장을 꾀한다는 의미에서 영성적 개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은 이신칭의의 경험을 자기의 삶에서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서툴 수 있다. 행위가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면의 경험을 행위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마치 부부간의 사랑도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적합한 표현을 배울 때만이 내면의 사랑이 바르게 표현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영성훈련의 이론적 배경은 '믿음에 의한 의인화'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자각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실제적인 삶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모든 조치를 말한다. 특히 개혁교회적인 영성훈련이란 이신칭의를 통해서 적극적인 성화를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또한 역으로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거듭 이신칭의에 대한 확신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영성의 문제는 기능적인 수행훈련의 부족이라기보다는 내면의 존재 형성에 대한 미숙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문제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을 대중운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동일한 물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제조업체처럼 대량으로 영성적인 인간을 찍어 내려 한다. 이는 신학교육이나 교회에서의 신앙교육이 일방통행식이라는 말이다. 한쪽은 강압적이고, 다른 한쪽은 반추의 여지없이 수동적으로 수용해야만 한다. 이런 주입식 훈련방식으로 각각 다른 인격적인 주체에 효과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인간 존재 자체가 신비적이고 독특하고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격 대 인격의 만남만이 존재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즉, 기성복식 영성훈련은 대강의 영적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 뿐, 근본적인 존재 형성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며, 따라서 상황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할 수도 없다.
두 번째 문제는 한국교회에서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온 성경공부운동의 한계성이다. 분명 성경공부 운동은 한 시대를 담당한 영성훈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인 생활공동체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고, 지나친 지적인 훈련에 머물러 있었다. 인간은 지성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두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제대로 된 가치판단과 더불어 가치에 따른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감성적인 훈련이 없는 지적인 훈련은 무모함 내지 무능력이다. 지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가 제대로 조화를 이루어 훈련되어질 때 그 사람은 정의적(情意的) 혹은 감성적(affective)인 영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곧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세 번째 문제는 영적성장에 대한 개별적인 영성식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중적인 영성운동이 주는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뿌리기는 하나 그것이 적합하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각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성품에 따라 각각 다른 영적성장의 패턴을 취하게 되어 있다.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영적성장의 패턴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각각 자기의 존재 형성을 위한 효과적인 선택과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는 외부적인 선물일 뿐만 아니라 내적인 인도이다. 내적인 인도를 식별하고 그것에 적절하게 반응하게 될 때 건전한 영적성장을 꾀하게 된다. 훈련된 영적지도자와의 영적인 담화를 통하여 식별을 도움받고 개인에게 적합한 영성의 길을 취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대중적이고 지적 훈련의 방향에서 선회하여 개인적인 특성을 인정하고 감성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방통행적이고 주입적인 영성훈련에서 벗어나 그를 확인하고 식별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장치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전문적인 목회 상담가가 있는 것처럼 영성식별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영성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영성훈련의 일차적인 주안점은 특수한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기능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 형성에 두어야한다. 개혁교회 영성적인 의미로는 '살아 있는 의인화에 대한 확신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영성훈련이다.


[Reference] : 박노열, 「1-4 영성훈련 - 영성목회」 http://www.koabbey.com/?mid=sp1&document_srl=30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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